뷔일러의 교재가 세계적인 표준 교재로 자리잡게 된 것은 페리(Perry)의 영어번 역 때문이었다. 그런데 페리는 1885년 번역에서는 분명하게 뷔일러의 책을 번역한 것 이라고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지만(Perry and Bühler 1885) 1936년 판에서는 뷔일러 의 이름을 아예 빼고 자신의 저술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는 인도문 법전통은 오류로 가득한 것이라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태도를 만들 어낸 것이 휱니였다. 휱니 자신도 유럽에서 배웠고 처음 독일에서 출간을 시작할 당 시만 해도 이렇게 강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인도전통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는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두드러지게 되었고 북미에서의 인도고전학 전통을 지 배하는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페리는 이 태도를 받아들여 자신의 문법서술 체계가 반 영되는 한에서, 다시 말해서 휱니의 문법서술이 근거가 되는 서술이 주어지는 한에서, 뷔일러의 비과학적이고 잘못된 인도전통을 따른 책을 번역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번 역이 아니라 실제로 다시 저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태도를 취한다.26) 현대적인 관점 에서 보자면 납득이 불가능한 이런 표절 사건은 이 당시 영미권 학자들이 가지고 있 던, 빠니니전통에 대한 역사비교언어학의 학문적인 우월함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27) 한국의 연구자와 학습자들이 휱니의 문법책을 두루 사용하는 한에서는 항상 염두에 둘 만한 측면이다.
휱니뿐 아니라 Max Müller의 문법책을 1886년에 발췌하여 출간했던 맥도널(Macdonell)도 1901년 자신의 문법책에서는 인도전통과의 결별을 지향했다.
강성용 p. 88.